구슬

Story/ETC
2020.11.27

나의 누이는 그저 하릴없이 죽어가는 미미한 것들 중 하나였습니다.


겨울이었습니다. 차디찬 바람이 스며, 볼끼를 단단히 여몄음에도 불구하고 고뿔에 시달리는 이가 나오던 때였습니다. 그 적의 나는 한없이 철업고, 어리던 까닭에. 그 겨울내 가득한 계절이 좋다며 만발한 눈꽃 위를 사부작, 사부작 걸어다녔습니다. 이른 아침. 해가 뜨기 무섭게 바구니를 쥐어들고. 겨울은 무릇 모든 것이 잠에 들어가는 계절이다만 알알이 붉게 물든 산수유만은 만발해있을 게 분명하여. 내 그것을 구해오겠노라. 그리 선언하였더랍니다. 아래. 아직 채 열을 넘기지 못한 아이들은 제 말을 이해하지 못한 눈이었고. 나이가 제법 차, 이 산에서의 생활이 익숙해진 아이들 몇몇은 나를 영웅이라도 보듯 반짝이는 시선으로 응시했습니다. 고뿔을 낫게 해준대! 짧다란 단발머리의 여자아이, 연화가 소리치면 이어 어린 것들도 큰 것들이 하던 것과 같이 곧은 시선으로 저를 보았습니다.

 

 그래. 나. 이 시선을 좋아했습니다. 어린 여자 아이가, 보호자도 없이 할 줄 아는 게 몇 개나 된다고. 아낙이 될 터인데 얌전히 좀 살라고. 할미께 혼나가며 자랐던 기억이 여즉 선명하였던 까닭에, 저라면 뭐든 할 수 있으리라 바라보는 듯한 그 시선을 애정했습니다. 꼭 특별한 무어라도 된 것 같지 않나요. 그러니 어린 시선에서 바라보자면, 똑같이 무리를 이끌고 있으나 대장이 되는 것은 언제나 제 누이였던 까닭에. 한 순간이라도 제 누이보다 더 든든한 이가 된 것 같은 심정이 기꺼웠습니다.

 

 그러나 누이는 나란 인간이 넘보기엔 감히라는 단어가 어울리게도 아득한 다정을 품은 인간인지라. 제 시커먼 속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그저 옷자락을 여며. 안 그래도 얇은 제 옷을 더, 더, 덮어주며 조심히 다녀오라 만면에 웃음을 꽃피웠습니다. 거기에 내 꽃이 있었습니다. 그토록 혹독한 겨울에, 이 모든 치들이 누이를 따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 봄꽃보다도 사랑스러운 여인. 그 상냥함을 시기한 제가 꼭 부덕한 것이 된 것만 같아 고개를 숙였습니다. 다녀올게. 도망치듯 걸음을 옮긴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런데 아십니까. 모든 일들에는 전조가 있다는 것. 괜히 뒤가 보고 싶었던 그 날 나는 그 길을 떠나면 안 되었습니다. 사람의 감이란 건 생각보다 무서워, 미묘하게 틀어진 것들로부터 불안함을 느끼곤 한다는 걸 몰랐던 사유입니다. 어리석기 짝이 없어.

 

 밤새 내린 눈은 그간 새겨두었던 걸음 자국을 지워낸지 오래였습니다. 하여 나는, 오랜 소나무 근처에 자리한 산수유를 찾기 위해 새로이 표식을 새겨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얗게 펼쳐진 설원에 나무란 죄 똑같이 생겨먹어서. 손 끝, 발 끝이 얼어가 걸음이 느려짐에도 불구하고 이 길이 맞는지. 저 길이었던 건 아닌지. 나는 도통 그 붉은 열매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낱알이 작긴 하다마는 이 설산에 붉을 것이라곤 범에 물려간 인간의 핏자국이나, 산수유 나무의 붉은 열매알 뿐인지라. 발견하려면 진즉 발견했어야 할 일이라 마음이 급해졌던가요.

 

 이럴 줄 알았더라면 나무에 표식이라도 새겨두는 거였는데.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만. 아무렴 우리. 제 아무리 깊은 산골에 틀어박혔다 한들 전쟁 통이었음은 변하지를 않아서. 좀처럼 함부로 행동할 수 없었습니다. 군락을 이끄는 이가 되고 나니 생각해야 할 것이 한 둘이 아니었던 까닭입니다. 사소한 것들이 전체를 위협할 줄을 알았습니다. 나와 내 누이가 살아가던 마을은 그리 사라졌습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지 않냐며. 멎어가는 다리를 통, 통 두들겨 아직 감각이 남아있구나.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이어가는 채로 걸음을 재촉했더랍니다. 시체를 묻는 것도 지긋지긋했던 차입니다. 그나마 다행히도, 그 근래에 더 도망쳐온 아이들이 없어 망정이었지. 그나마도 버티기 힘들어 슬슬 식량이 부족해지고 있어, 조만간 나뭇줄기라도 끓여 국을 해먹는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범을 잡을 생각은 없었냐고요. 이 겨울, 어딘가에 뱀이 자고 있진 않았겠냐고요. 가당키나 한 말이겠습니까. 그 군락. 채 열 여덟을 지나지 못한 내 누이가 어미인 자그마한 마을이었습니다. 제일 나이가 많은 이조차 겨우 스물을 넘겼으며, 그 치는 몸이 약해 긴긴 열을 앓고 있었으니 사람으로 셈하지 않았습니다. 전쟁 통에 살아남을 수 있는 것들은 어린 아이들 뿐입니다. 나이가 찬 사내들은 진즉 군에 끌려가 명둘을 달리한 까닭이며, 그들을 기다리던 아낙들은 시어미를 모시다 처들어온 적군들에게 죽임을 당한지 오래입니다. 어린 것들만이 살아남았습니다. 오직 작은 것만이. 아궁이든, 옷장이든. 겨울을 대비해 쌓아올렸던 연탄 무더기 사이나, 말을 먹이려 준비했던 건초 더미 사이에 숨어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오래된 철내음 같은 피비릿내로부터 뛰어 도망친 아이들. 그래. 그래. 차라리 죽음으로 뛰어들어라.

 

 이 산, 설산. 험하고, 범이 많아 군졸도 그들의 사령관도 꺼리는 곳이라 하였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맞부딪히면 전략이라도 통할 텐데, 범으로부터 당하는 습격은 피할 도리도 없다고요. 그러니 그곳은 죄 죽지 못해 살았고, 살고 싶어 죽음으로 찾아든. 살아남은 어린 것들을 위한 마지막 쉼터였습니다. 오직 두려움을 잊은 어린 것들만이 도착할 수 있는 낙원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와 내 누이는, 그 가엾은 것들을 위해 깃을 잡은 어린 대장이었습니다. 

 

 우리도 어리기 짝이 없었습니다. 다만 자리에 누운 치를 제하고는 가장 나이가 많았고, 타고난 성정부터가 오지랖이 넓어 추위에 떠는 아이들을 그저 내버려둘 수가 없었으니. 우리는 당연하다는 듯 그 무리를 이끌기 시작했습니다. 천방지축이라 할미께 혼나기 일수였던 나는, 산을 곧잘 타서 바깥을 나도는 데에 소질이 있음을 알아차렸고. 좋은 아낙네가 될 것이라며 무릇 마을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곤 하였던 언니는. 마냥 유약할 줄로만 알았던 내 망상과는 달리 제법 강단있는 어른으로서 아이들을 돌보았습니다. 당연하다는 듯 이루어진 분담 속에서. 단언컨데 우리는 우리만의 작은 평화를 만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때로는 이 또한 운명인게 아닌가 생각할 정도로, 우리는 고요히 젖어가는 중이었습니다.

 

 하여 나는 걸음을 멈출 수 없었고. 본능인지, 우연인지. 신이 도우신 겐지. 그토록 꼭꼭 숨어 보이지 않던 산수유 열매를 찾아내는 데 성공하여, 주머니 가득가득. 그 붉은 날알을 채워 넣었습니다. 이 정도면 올 겨울은 문제 없겠다 싶을 정도로 한가득 주워다 품 안에 품으니 시리던 겨울이 다 무어라고. 제 가슴이 땃땃해지던 것을 더러 뿌듯함이라 일컫던가요. 돌아가는 걸음은 마냥 해맑았더랍니다.

 

 구름이 끼어 있었으나, 돌아가는 걸음이 무디진 않았습니다. 빙 둘러가는 것이겠다마는 내가 걸어온 걸음만큼이나 분명한 자국이 또 어디 있겠나요. 혹여 들짐승이 이 자국을 보고 따라올까 싶어 하나, 하나 지워낸 까닭에 마을 근처에 다달을 즈음이 되어서는 어느덧 해가 저물었으나 그리 괴념치 않았습니다. 예상했던 일이었으니, 그저 누이께 칭찬을 받을 일만을 생각했던 겝니다. 나린 눈 위로 발자국이 피어납니다. 그리고, 돌아가는 길에는. 처음 보는 흔적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단언컨데 그것은, 있어서는 안 될 것이었습니다.

 

 말했지요. 내가 이끄는 군락은 어리고 약한 것들만이 모여 만들어진 것이라, 어른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나마 큰 것 들 중에는 나를 제하곤 부러 마당을 나설 까닭이 없을 뿐 아니라, 나는 그들의 걸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니, 그 이전에. 이는 둘을 훨씬 넘은 숫자입니다. 사내의 것입니다. 군화의 흔적입니다. 줄을 잘 맞춘. 유약하기 짝이 없어 경계나, 기습이 필요치 않다는 것을 잘 아는 듯한. 

 

 그 뒤로 어찌 움직였는지 모르겠습니다. 무작정 내달렸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있습니다. 저를 기다리며 바깥을 보곤 하던 어린 것들을 분명히 기억합니다. 그 아이들을 뒤로 물리며, 위험하다. 춥다. 그리 말하였을 게 분명한 누이가 선명히 떠오릅니다. 품에서 떨어져내린 산수유를 주울 세도 없었습니다. 빌 수만 있다면. 누구 하나라도 살려달라고, 빌 수만 있다면. 이 아이들. 참으로 작고 유약하여, 죽일 가치도 없노라. 그리 이야기할 기회라도 있다면 무어라도 바뀔 텐데!

 

 아, 나는 알았습니다. 어떤 풍경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지. 유난히, 낙엽이 잘 비친다 싶었습니다. 소복이 내린 눈자락이 걸음을 모두 지울 만치 자욱하였는데, 무성히 떨어진 낙엽의 잔해가 한없이 붉어. 시선을 빼앗겼더랍니다. 그것이 익숙한 산수유 나무를 찾지 못한 까닭입니다. 더할까요. 근래 이 근처로 찾아드는 걸음이 끊겼다 싶었습니다. 이곳. 아이들이 도망치기로 유명한 산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 전쟁 통에 살아남고자 하는 이들이라면 하나, 둘. 조금이라도 더 왔어야 옳습니다. 삶과 죽음을 확신할 수 없을지라도. 죽음을 각오한 이는 퍽 용맹한 까닭에. 걸음이 멎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누군가. 이리로 스미는 것들을 잡아채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진즉 나무뿌리를 삶아 먹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해, 국군이라면. 

 

 국군이라면. 이리 매캐한 연기가 피어오를 리가 없습니다. 우리를 구하겠노라, 혹은 잠시만 머무르겠노라. 그리 이야기하며 다정한 웃음을 건네고, 피로에 지친 옷자락을 내려놓았을 것입니다. 총을 무서워하는 아이들이 퍽 어여뻐 괜찮노라 어르고 달래었거나. 언니 혼자만이 그들을 상대하며 식량을 내어주기 바빴을 것입니다. 세상이 망하더라도, 이는 변치 않았어야 마땅합니다. 

 

 한 번 짓밟혀 숨이 죽어버린 눈꽃은 얼음처럼 단단하여, 나는 미끄러졌습니다. 변명일까요. 그럼 이리 이야기합시다. 내 낙원이 무너지는 꼴이 그토록 서럽고 무서워. 그만 다리에서 힘이 풀려버렸다고. 망막에 맺히던 시림은 붉음으로 산화하였습니다. 마른 목재를 타고 불길은 번지고 있었고. 채 일곱도 되지 않은 어린 것들은 동백이라도 핀 것 마냥 붉게 물든 치들을 바깥으로 옮기고 있었습니다. 군인은 없었습니다. 총탄이 아까웠던 걸 겁니다. 옹기종기 모여 움직이는 것들 사이에 키가 큰 치들은 없으니. 아마. 이 혹독한 산을 이기지 못하고 모두 죽어버릴 거라 생각한 게 아닐런지요. 용케 내 걸음, 뒤쫓지 않았다 싶었던 한편. 생각해보면 이 산 어디에 범이 나오는지 그들은 알 턱이 없으니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았던 걸 겁니다. 

 

 그게 내 삶의 이유입니다. 그게, 내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연화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두 눈이 퉁퉁 붓도록 운 아이의 낯에는 시퍼런 멍자국. 새빨간 핏줄기가 선연했습니다. 나는.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걸음. 도통 움직이지 않는 것을 예, 아까 그랬던 것처럼 질질 끌어다 옮기고 있노라면 우리가 일구어둔 단단한 땅이 닿습니다. 익숙한 감각입니다. 위로 뭉게져 피어오르는 매케한 연기. 이 일대의 얼음이란 얼음은 죄 녹여버릴 것 같은 열기는 결단코 낯설은 것이었으나. 그 이외의 것들은 모두 익숙하여. 나는, 일그러지는 시야를 막을 길이 없었습니다.

 

 울었던가요. 외쳤던가요. 아닐 거라고. 아닐 거라고. 모여 움직이는 작은 무리로 뛰어들면.

 

 나의 봄꽃. 가엾은 것. 유리 구슬과도 같이 투명하고 단단하여. 결단코 깨질 일 없을 줄 알았던. 세상에서 가장 유약한 사람이 파랗게 질려 누워 있었습니다. 아니지? 아니잖아. 무심결 내뱉은 말에. 아이들. 하나 둘 울음을 억눌린 울음을 터뜨리는 것을 들으면서도, 나는 그 모든 것들이 마냥 꿈이었으면 하여 두껍던 장갑을 벗어던지고 제 누이의 말간 피부 위로 손을 얹었습니다. 차가웠어요. 겨울이 그 자리에 있는 듯 하였습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아, 쇠를 긁기라도 하는 것마냥 긴 이명이 들려와. 이마. 뺨. 손. 그 모든 것들을 맞대며 매달렸으나 식어버린 온기는 돌아올 줄을 몰랐습니다. 아니. 여기 있다가는 핀잔을 받을 거야. 그런 생각에 챙기자고. 죽은 이들을 어찌 바깥으로라도 옮기자고. 멀리. 멀리. 나와 내 누이, 처음 이 산에 도착했을 당시 멋도 모르고 들어갔던 굴에 숨으면 한동안은 안전할 거라고. 그리 이야기하며 움직였습니다. 반쯤은 무의식이었습니다. 언니를 굽혀. 등에 업고. 걸음을 내딛자니.

 

 왜 이리도 무겁고 뻣뻣한지.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죽은 이들이 많았습니다. 무릇 조금이라도 살아남을 수 있겠다 싶으면 다 죽여버린 셈이었습니다. 불길이 번져 데려오지 못한 것들도 많아, 우리 모두는 또 다시 한 번 상실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아, 이를 이제 어찌 해야 한 단 말인지. 눈 앞이 새하얗게 물드는 감각을 느껴본 적이 있으십니까. 나는, 느꼈습니다. 차라리 혼절하여 꿈이었나. 그런 착각이라도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러기에는 내 등만을 바라보는 것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나, 언니의 장례 한 번 제대로 치루어주지 못했습니다. 죽은 이의 시체에는 구더기가 달라붙어, 병을 옮긴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던 까닭에. 저 멀리, 멀리. 나 혼자 걸음을 옮겨 죽은 이들의 시체를 한 곳에다 모아놓고 불을 붙였습니다. 오래 있을 수도 없었습니다. 군이 어디 있을 지 알 수 없어서, 그 편린을 물끄럼 바라만 보다가. 죽어서라도 고뿔이나마 걸리지 말랍시고 산수유 알갱이 몇 알만을 던져준 채. 그나마 큰 아이의 손을 붙잡고 다음. 다음을 기약해야만 했습니다.

 

 혹자가 말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삶은 반복의 연속일 뿐이라고. 그럼 나는, 나는 또 다시금. 누군가의 죽음을 반복해야 한단 말입니까. 모르겠습니다. 다만 인간의 삶이 그저 유리 구슬 같다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투명하게 비치는 것은 삶처럼 아름답습니다. 몇 번 떨구더라도, 생각만치 그리 쉽게 깨지지는 않는다는 점이 욕망과도 같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불현듯 찾아오는 사건에 의해 쉽게 망가진다는 점이. 죽음과도 같습니다. 

 

 그 사실이 나를 그토록 괴롭게 만들었습니다.